인터스텔라 단편 크리스토퍼 놀란
S T A Y
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
시작부터 낭만이 가득한 화면이 참 좋았다. 끝도 없이 넓은 옥수수 밭과 그 위를 거침없이 망가뜨리며 달려가는 자동차란... 내게 그간 인터스텔라는 '댁의 아드님 성적으로는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습니다.' 짤로만 알려져 왔기에, 초반에 나오는 대사들의 웃김이 눈을 사로잡았다.
가령...
머피: 할아버지는 유령이 있다고 했는데
쿠퍼: 그건 할아버지가 유령이 될 나이가 돼서 그래
이러한 높임말 없는 직구 자막이라든지... 이때까지는 아주 즐겁고 가볍게 보고 있었는데 (물론 '학교는 언제가지? 정학이라니요? 아 뭔소리지? 이렇게 대책없이 살아도 되나?' 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것은 낭만을 잊은 자들이 거는 태클임을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음)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쿠퍼의 우주행... 그리고 STAY
난 이때는 알지 못했다... 이게 그저 쿠퍼를 보내고 싶지 않은 머피의 어리광이라고 생각했었다. 보던 내가 훗날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도 모르고... 이야기는 정말 쫀득했다. 화내! 하면 화내고 울어! 하면 우는 시청자인 내가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?
7년, 그래 그럴 수 있어.
그러고 나니 파도가 한차례 몰려왔고 순식간에 삶의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.
23년이나.
응답으로조차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보낸 메세지들을 보는 순간 눈물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. 떠나기 전 대학 갈 성적도 안되던 아들이 2등으로 졸업을 하고, 여자친구를 만들고, 결혼을 하고, 자식을 낳고...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함께 했을 수도 있었는데(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꿈꿨는데) 그러지 못한 채 고스란히 공백으로 남는 게 정말 가슴 아팠다. 그리고 자식(손녀)이 죽었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체념에서 남은 사람의 괴로움도 엿볼 수 밖에 없었다(오히려 후에 등장하는 머피의 인사-이제 같은 나이가 되었으니 돌아와-보다 더 울었다.).
클라이막스도 그랬다. 옥수수밭은 불타고, 생존 가능한 행성은 거짓말이고, 쿠퍼는 죽어가고, 믿었던 사람은 배신하고, 사랑했던 것들을 전부 한번에 빼앗아가서 망가뜨리는 것 같은 공허함을 계속 느끼게 해준다. 한참 화를 내다가 허탈해지고, 또 화를 내다가 안된다고 중얼거리게 되는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. 소리쳐도 바꿀 수 없는 시간들과, 몇 번의 우연과 기회를 넘어 모든 게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느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무력해 지는 것 같았으나...(물론 이 과정에서 펑펑 울어서 탈진한 걸 수도)
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사랑이야기라는 것. 어떤 슬픈 일들도 촘촘한 선택의 끝에 거스를 수 없이 짜여진 결과라면, 어떤 좋은 일들도 사랑이라는 선택 아래 일어난 결과라고 일러준다.
머피가 쿠퍼의 메세지를 듣는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. 고집스레 그 집과 농장을 지키고 머피의 짐을 모두 남겨둔 톰의 행적은 쿠퍼를 향한 미련과 사랑이었고(결국 포기하지 못한) 그렇기에 머피는 그 방으로 다시금 돌아갈 수 있었다. 이해할 수 없는 톰에게 화를 내고 떠나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(비록 옥수수 밭에 불은 질렀지만) 가족을 향한 머피의 사랑이고, 시계를 잊지 않고 자신의 방에 올라가 쿠퍼의 메세지를 받을 수 있던 것 역시 쿠퍼를 향한 머피의 사랑이다. 이들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마침내 도달한 '살아갈 수 있는 땅'은 브랜드가 사랑했던 에드먼드의 땅이기도 하다.
가지 말라는 머피의 말을 듣지 않았던 쿠퍼나, 사랑하는 사람을 보려고 먼 행성을 가야 하냐며 무시하고 잘못된 행성으로 향했던 우주선, 믿음과 사랑을 저버린 플랜 B 추종자들은 마치 이성같아 보이지만 그 선택으로 인한 고통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점 까지도...
이 모든 내용을 169분 안에 처넣었다(너무 길어). 허나 그만큼 우주, 낭만, 사랑에 푹 절여질 수 밖에 없으니... 한번쯤은 다들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. 그리고 마지막으로... S.T.A.Y